새로운 도전: 현장 진료에서 진단 의학으로, AI를 배워 의학에 접목하는 의사
13년차 피부미용 의사에서 병리학 전공의로, AI 융합의료를 향한 이현영 씨의 도전

시간이 지날수록 제가 하고 있는 일의 한계를 느꼈어요.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일지 사색하며 새로운 기회를 찾아보게 되었죠.
병리학 전공의 1년 차로 새로운 길을 걷고 있는 이현영 씨는 그전까지 13년간 피부미용 분야에서 환자들을 만나 왔습니다. 오랜 시간 환자의 고민을 듣고 해결하며 쌓은 경험은 분명 값진 것이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학창 시절 배웠던 의학 지식이 제한된 영역 안에 머물러 있다는 한계감이 점점 크게 다가왔습니다.
신체 겉으로 드러나는 효과보다, 의학이 지닌 본질과 내면의 가치에 더 깊이 이끌렸습니다. 자신의 의학적 역량을 근본적인 분야에서 쓰고 싶다는 바람이 진로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졌고, 변화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병리학과 운명적인 만남, 미국 샌디에이고에서 시작된 전환점
미국의 여러 지역 병원에서 진행된 참관 프로그램에 참여하던 중, 변화의 시작은 뜻밖에도 샌디에이고에서 찾아왔습니다. 그녀는 University of California, San Diego 메디컬센터의 혈액종양내과 프로그램을 통해 처음으로 병리학이라는 분야를 접하게 되었습니다.
단지 미국 의료 시스템을 경험해 보려는 목적으로 참가했던 프로그램이었지만, 다학제 회의에서 병리학 교수가 조직을 분석하고 진단을 내리는 장면을 본 순간, 이현영 씨는 병리학의 깊이와 매력에 매료됐습니다.
“다양한 과가 한자리에 모인 다학제 회의에서 병리학 교수님이 조직을 분석해 진단을 내리는 모습에 깊은 인상을 받았어요. 환자를 직접 대면하지는 않지만, 질병의 본질을 꿰뚫는 책사 같은 역할이 제 성향과 꼭 맞겠다고 느꼈죠.”
복잡한 퍼즐처럼 얽힌 진단 케이스를 함께 논의하고, 그 실마리를 찾아가는 병리학 과정 속에서 그녀는 오랫동안 느껴왔던 학문적 갈증이 조금씩 해소되는 듯했습니다.
병리학은 정적인 과로 분류되지만, 이현영 씨는 오히려 그 조용한 탐구의 결이 자신의 성향과 잘 맞는다고 느꼈습니다. 직접 환자를 진료하지는 않지만, 치밀한 분석을 통해 질병의 본질을 밝혀내는 과정은 오랫동안 갈망해온 ‘의학의 본질’을 마주하는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낯설던 AI, 이젠 누구나 배울 수 있는 새로운 도전
미국에서 돌아온 뒤, 이현영 씨는 병리학을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진단의 본질을 탐구하는 분야에 매력을 느낀 만큼, 앞으로 어떤 역량을 갖춰야 할지 고민도 깊어졌습니다.
“AI에 대해 아는 게 거의 없었어요. 굳이 떠올리자면, 집에 있는 ‘AI 세탁기’ 정도였죠. 하지만 앞으로 AI를 이해하고 다루는 의사와 그렇지 않은 의사로 나뉠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AI를 잘 다루는 임상-연구 융합형 전문가가 되고 싶다는 목표를 세웠어요.”
그녀에게 AI는 막연하고 낯선 기술이었습니다. 하지만 의료계에서 AI를 적극적으로 도입하고 활용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는 사실이 그녀로 하여금 ‘나는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라는 질문을 던지게 했습니다.
늦게 시작한 만큼 변화의 흐름에 더 빠르게 적응해야 한다는 위기감도 있었습니다. 단순히 기술을 배우는 데 그치지 않고, 의료와 기술의 경계를 연결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열망. 그 다짐은 곧 행동으로 이어졌습니다.
AI 융합 의료인으로서 첫걸음, Microsoft AI School
AI에 대한 두려움은 배움의 동기가 되었습니다. 익숙하지 않아 선뜻 다가서지 못했던 기술이었지만, 그녀는 의료와 AI가 만나는 지점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찾고자, Microsoft AI School 5기에 도전하게 됩니다. Microsoft AI School은 마이크로소프트가 고용노동부의 청년 인재 양성 ‘K-디지털 트레이닝’ 사업에 참여해 진행하는 프로그램입니다.
매일 8시간 넘게 이어지는 수업은 쉽지 않은 도전이었습니다. 익숙하지 않은 용어가 쏟아지는 강의 속에서, 이해하지 못한 부분은 밤 늦게까지 반복해서 복습해야 했습니다. 전공자들과 함께 협업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역할을 찾는 것 또한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IT 전공자와 프로젝트를 함께 진행하다 보니, 제가 뭘 할 수 있을까 고민이 많았어요. 결과물의 완성도를 생각하면 제가 빠지는 것이 오히려 낫지 않을까 싶은 순간도 있었죠. 하지만 몇 번의 시도를 통해 자율성과 자신감을 찾아갈 수 있었습니다.”
두 번째 프로젝트부터 점차 자신만의 역할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의료 현장에 대한 깊은 이해, 사용자 관점에서 실질적인 시나리오를 구체화하는 능력은 그녀의 강점이었습니다.
기술 구현은 전공자 팀원들에게 맡기고, 그녀는 의료 현장의 경험을 바탕으로 아이디어가 실제로 어떻게 적용될 수 있을지 고민했습니다. 완성된 기술에 실용성과 현실성을 더하는 일, 그녀는 그것이 마치 마지막 퍼즐 조각을 맞추는 일 같았고, 그 역할이 바로 자신에게 주어진 몫이라고 느꼈습니다.
그 결과, 두 번째 프로젝트에서는 15개 팀 중 1등, 세 번째 프로젝트에서는 2등을 수상했습니다. 기술보다 ‘현장의 맥락’을 고민한 그들의 시도는 심사위원들에게도 충분히 설득력 있게 다가갔습니다.
특히 의료 주제를 다룬 3차 프로젝트에서는 ‘환자-의료진 간 소통 문제’를 AI 기술로 해결하는 과제에 도전했습니다. 그녀는 수술 동의 절차에서 발생하는 오해나 분쟁에 주목했고, 이를 AI 챗봇으로 개선하는 아이디어를 기획하고 주도했습니다. 그녀는 수술 동의 과정에서 발생하는 소통의 간극이 실제 의료 현장에서 적지 않은 문제임을 체감했고, 이를 AI 기술로 해결할 수 있다는 아이디어를 팀원들에게 제안하며 직접 기획을 주도했습니다.
팀은 환자 상담 내용을 정리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챗봇 기능을 구현했습니다. 여기에 의료진을 위한 논문 검색 및 요약 기능도 추가해 실용성을 높였습니다. 의료 현장의 맥락을 반영한 이들의 접근 방식은 심사위원과 수강생 모두에게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습니다.
“평생 주입식 교육에 익숙해 있었거든요. AI활용 과정은 처음부터 끝까지, 문제를 스스로 정의하고 해결책을 찾아야 했어요. 그런 ‘탐색형 학습’ 경험은 병리학 연구자인 제게 정말 큰 자산이 되었다고 생각해요.”
질병 진단의 미래를 설계하는 융합형 의료인으로서의 여정
AI를 배운 뒤, 병리학 전공의로 첫 해를 보내고 있는 이현영 씨는 대학원 진학까지 고민할 만큼 학문과 연구에 깊이 몰두하고 있습니다. 전공의 지원 당시, AI 융합의료에 대한 고민과 목표를 분명히 드러냈고, 병리학을 통해 연구자로 성장하고 싶다는 비전을 교수진에게 자신 있게 전했습니다.
현재 그녀는 지도 교수와 함께, AI 기반 종양 면역표현형 분류 연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연구 데이터 정리와 처리에는 AI School에서 익힌 Python과 Visual Studio Code를 사용하고 있으며, LLM 학습 경험을 바탕으로 Copilot을 활용해 논문을 분석하고 의학 지식을 더욱 효율적으로 습득하고 있습니다.
“의대 시절을 돌이켜 보면, 지금은 정말 혁신적인 시대에 살고 있다는 걸 느껴요. 논문이나 교과서를 정리하는 데 5시간이 걸리던 일이, 지금은 Copilot을 쓰면 1시간이면 끝나요. 심지어 3시간짜리 수업도 30분 만에 핵심을 파악할 수 있을 정도니까요.”
한 아이의 엄마이기도 한 이현영 씨는, 늦은 나이에 전공의에 도전하기까지 망설임이 컸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AI를 공부했던 경험은 그 편견과 불안을 깨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그녀는 전공이나 직업을 막론하고, 누구든 AI 배움을 통해 인생의 방향을 바꿀 수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특히 경력단절로 재취업을 준비하는 주부나, 직무 전환을 고려하는 직장인 등, 변화의 문턱 앞에 선 모든 이들에게 AI는 도전의 장벽을 낮추고 가능성을 열어줄 수 있는 도구가 된다고 말합니다.
“나이가 있으면, 적응에 어려움이 있을 거라고들 하잖아요. 그런데 AI를 공부했다는 이력이, 저 스스로에 대한 믿음을 심어줬어요. 열린 마음으로 도전한다면, AI는 누구에게나 인생의 전환점이 될 수 있어요.”
이현영 씨는 앞으로도 새로운 도전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AI 기술을 이해하고 주도적으로 다뤄본 경험에서 얻은 자신감을 바탕으로, 그녀는 일상 속에서 작지만 분명한 변화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이제는 더 성장한 모습으로, 의학과 AI의 교차점에서 의미 있는 변화를 만들어가고 싶다는 바람을 품고 있습니다.
진단의 본질을 탐구하는 병리학자이자, 기술을 이해하고 연결하는 융합형 의료인. 이현영 씨의 여정은 지금 이 순간에도, 조용하지만 단단하게 미래를 향해 나아가고 있습니다.